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(문단 편집) == 주석 == [include(틀:역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영도인)] [include(틀:역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)] ||<-2> [[파일:중국 공산당 문장 옐로.svg|width=35]][br] '''{{{+1 {{{#ffff00 중앙군사위원회 주석}}}}}} [br] {{{#ffff00 中央军事委员会主席}}} [br] {{{#ffff00 Chairman of the Central Military Commission}}}''' || ||<-2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" [[파일:시진핑.pn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f00 '''현직'''}}} ||[[시진핑]] || || {{{#ffff00 '''취임일'''}}} ||[[2012년]] [[11월 15일]],,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,, [br] [[2013년]] [[3월 14일]],,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,, || || {{{#ffff00 '''[[관저|{{{#ffff00 관저}}}]]'''}}} ||[[중난하이]] || [clearfix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 -6px" [[파일:attachment/200409210029_435754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f00 [[2004년|{{{#ffff00 2004년}}}]] [[9월 21일|{{{#ffff00 9월 21일}}}]]의 중앙군사위 기념 촬영 [[사진|{{{#ffff00 사진}}}]]. 가운데 왼쪽이 장쩌민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, 오른쪽이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이다. 최고지도자가 두 명인 듯한 이런 어색한 사진이 나온 이유는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국가주석직과 공산당 총서기직은 제때 넘겼지만 권력의 핵심인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늦게 넘겨줬기 때문이다.}}} || >'''[[권력]]은 총구에서 나온다.''' >---- >[[마오쩌둥]]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은 중국 군사력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인 [[최고지도자]]로 간주된다. [[중화인민공화국]]이 건국된 이래 중국의 [[최고지도자]]들은 모두 이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 앉았다. 중국의 법적인 [[국가원수]]는 [[중화인민공화국 주석|국가주석]]이고,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건 당 서열 1위인 [[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|총서기]]지만, [[실세]]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다. 존재감이 약한 [[화궈펑]]도 일단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은 최고지도자 대접을 받았다. 이 자리는 [[정년]]이나 [[임기]]가 없어서 죽거나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으며 [[중국 주석|국가주석]], 당 [[총서기]]가 중앙군사위원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[[일당 독재]] 국가인 중국이 사실상의 [[이원집정부제]] 국가처럼 운영되는 기이한 광경이 나타나기도 한다. 마오쩌둥은 정치적 실책 등으로 국가주석에서 물러나면서도 죽을 때까지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만큼은 내놓지 않았으며,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자신에게 반기를 든 후임 국가주석 [[류사오치]]를 실각시키는 등 계속해서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을 행사했다. 마오쩌둥 사후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1인자가 된 [[덩샤오핑]]도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 자리에는 앉지 았았지만 [[1981년]]부터 [[1989년]]까지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움켜쥐고 중국을 통치하였다. 이 시기에 국가주석은 [[리셴녠]]과 [[양상쿤]]이 맡았지만 [[얼굴마담]]에 불과했고, 연이어서 당 총서기를 맡은 [[후야오방]]과 [[자오쯔양]]도 덩샤오핑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실무 책임자에 불과했다.[* [[후야오방]]은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주장하다가 [[덩샤오핑]]에 의해 당 [[총서기]] 자리에서 한 방에 짤렸다. 그리고 후야오방이 [[1989년]]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시위가 일어났는데, 이게 바로 [[천안문 6.4 항쟁]]의 시작이 됐다. 후야오방의 후임자였던 [[자오쯔양]]도 천안문 [[민주화 운동]] 당시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가 [[숙청]]됐고 [[장쩌민]]이 후임 총서기가 되었다.] 그래서 덩샤오핑 시절에는 덩샤오핑이 중국의 공식적 국가원수인 국가주석도, 공산당 [[당수|최고지도자]]인 총서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[[정부수반]] 뿐 아니라 [[국가원수]] 노릇을 했다. [[히로히토]] [[일본]] [[천황]], [[마가렛 대처]] [[영국 총리]] 등 각국의 정상들과 회담을 한 사람이 덩샤오핑이었던 것만 봐도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 사실상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. 덩샤오핑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국가주석, 당 총서기,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모두 [[장쩌민]] 한 명이 겸임하도록 내정하면서 당/정/군의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였다. 덩샤오핑의 이러한 배려 속에 장쩌민은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. 그러나 이 때에도 [[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|국무원 총리]] 자리에는 [[리펑]]을,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에는 [[류화칭]]을 내정하여 여차하면 장쩌민을 [[견제]]해 줄 세력들을 심어놓았고 실제 덩샤오핑이 사망한 뒤에 장쩌민 대 리펑의 [[파벌]]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. 당시 같은 [[상하이방]]이었지만 계파가 달랐던 [[차오스]] 당시 [[전인대]] 상무위원장도 경쟁자 중 하나였지만 얼마 못 가 정계를 은퇴했다. [[장쩌민]]이 확고하게 중국을 지배하던 시기는 덩샤오핑이 사망하고 차오스 상무위원이 실각하고 난 뒤였다. 장쩌민은 자신에게 배정된 임기를 다 마치고 [[2002년]]에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자리를 덩샤오핑이 살아있을 때 정해준 후임자 [[후진타오]]에게 제때 넘기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그 이후로도 1년 10개월 동안이나 시간을 질질 끌면서 넘겨주지 않았으며, 그랬기 때문에 문단 상단의 사진과 같은 광경도 나올 수 있었다.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[[상하이방]]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는 관측이 팽배한데, 하여튼 후진타오는 집권 2년차까지는 군 통수권이 없는 반쪽 짜리 지도자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. 결국 [[2004년]]에 후진타오는 중앙군사위 주석까지도 장쩌민으로부터 넘겨받았지만 장쩌민은 그 대신 자신의 측근이었던 [[쉬차이허우]]를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올려놓아 후진타오가 중앙군사위를 장악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방해했고, 그 때문에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은 뒤에도 이미 군 고위층이 전부 장쩌민계 일색이라서 후진타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[[외신]] 기사가 여러차례 나오기도 했다. 뿐만 아니라 장쩌민은 [[상왕|주요 정치 행사 때마다 후진타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동일한 의전을 받는 등]] 퇴임 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. 후진타오는 장쩌민과는 달리 후임자 [[시진핑]]에게 국가주석, 당 총서기,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모두 통째로 이양하였다.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반쪽 짜리 권력(당 총서기, 국가주석)만 이양하고 후진타오 측으로부터 자기 파벌에 대한 [[안전]]을 보장받은 후에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준 것에 비하면 심히 대조되는 모습.[* 다만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[[임기]]가 불일치하기 때문에 시진핑은 당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먼저 공산당 중군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함께 넘겨받았다.] 이에 대해 [[일본]]의 중국 전문 르포 [[기자]]인 미네무라 겐지가 쓴 '[[시진핑|13억 분의 1의 남자]]'라는 [[책]]에 따르면, 원래 후진타오도 장쩌민처럼 국가주석직과 당 총서기직만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자기가 갖고서 [[상왕]] 정치를 하길 원했지만, 전임자이자 [[정적]]이었던 장쩌민과의 알력 다툼에서 끝내 이기지를 못하자 장쩌민과 [[동귀어진]]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리를 시진핑에게 넘긴 것이라고 한다. 그렇게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바라던 대로 장쩌민의 세력을 [[시진핑/행보#s-1.2|반부패 운동]]을 명분으로 숙청해 주면서 덩샤오핑 때부터 시작된 상왕 정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뒤에는 자신의 종신 집권 시대를 열었다.(...)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사망할 시 관에는 [[오성홍기]]가 아닌 [[낫과 망치|중국공산당기]]를 덮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